필리핀인의 DNA는 왜 이렇게 복합적으로 보일까

고대 인류의 흔적, 오스트로네시아 확산, 섬과 산악 지형의 분절성, 그리고 교역과 식민의 역사

필리핀인의 유전적 배경을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한때는 대만 부근에서 내려온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의 이주가 필리핀 인구 형성의 핵심이라는 설명이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그 그림이 훨씬 더 복합적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필리핀 열도에는 매우 오래된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고, 섬이 잘게 나뉜 지형 때문에 집단들이 오랫동안 분리되거나 다시 섞이는 과정도 반복되었다. 여기에 수천 년 동안의 항해, 교역, 지역 간 혼인이 더해지면서 필리핀인의 유전사는 단일한 출발점보다 여러 층이 겹친 구조에 가깝게 보이게 됐다.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루손 북부의 칼라오 동굴이다. 이곳에서는 2007년 이후의 발굴을 통해 나중에 ‘호모 루조넨시스’로 분류된 고인류 화석이 보고됐다. 2019년 네이처 논문은 칼라오 동굴에서 나온 치아와 손·발뼈 등이 독특한 조합의 형태를 보인다고 설명했고, 이 발견은 필리핀이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동남아 인류 진화사의 중요한 무대였을 가능성을 더 크게 부각시켰다.

필리핀 칼라오 동굴 이미지
칼라오 동굴 이미지. 필리핀의 오래된 인류 흔적과 호모 루조넨시스 논의를 설명.

현생 필리핀인의 유전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대목은 고인류 화석만이 아니다. 최근 유전학 연구는 필리핀의 일부 토착 집단, 특히 아이타 계통 집단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데니소바인 관련 조상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2021년 Current Biology 논문은 아야타 막부콘 집단이 현재까지 조사된 세계 인구 집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데니소바인 관련 조상을 지닌다고 제시했다. 이 결과는 필리핀 인구 형성이 단순히 최근 수천 년의 이주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훨씬 오래된 인류 집단과의 상호작용까지 포함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다. 이런 결과가 곧바로 “필리핀인은 특별한 별개의 인간 집단이다”라는 뜻은 아니다. 더 정확한 해석은, 필리핀 열도의 일부 집단이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인류 이동사에서 매우 오래된 층위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존하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다시 말해 필리핀인의 DNA가 ‘이상하다’기보다, 오래된 인류사의 흔적이 지역과 집단에 따라 다르게 남아 있고 그 흔적이 특히 선명하게 관찰되는 사례가 있다는 뜻이다.

필리핀인의 유전적 구조를 말할 때 오스트로네시아 확산도 빼놓을 수 없다. 언어학과 고고학, 유전학에서는 대체로 대만을 기점으로 한 오스트로네시아 확산이 약 4천 년 전 전후로 필리핀 북부와 그 이남 섬들로 이어졌다고 본다. 이 확산은 단순히 사람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농경 기술과 항해 기술, 새로운 생활 방식, 그리고 거대한 언어 계통의 확산을 동반했다. 오늘날 필리핀의 다수 언어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것도 이 과정과 연결된다.

필리핀 발랑가이 배 이미지
발랑가이 배 이미지. 섬과 섬을 잇는 항해 문화와 오스트로네시아 확산, 열도형 정체성을 설명.

하지만 이 확산 역시 ‘기존 주민을 완전히 대체한 사건’으로만 보면 단순화가 된다. 실제로는 먼저 살던 수렵채집 계통 집단과 뒤에 들어온 오스트로네시아 계통 집단이 서로 섞이고, 지역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며, 오랜 세월 동안 새로운 문화적 조합을 만든 것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저지대와 도시권에서는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의 영향이 더 강하게 보일 수 있고, 고산지대나 숲, 섬의 외곽 지역에서는 더 오래된 조상 계통의 흔적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남을 수 있다. 즉 필리핀인의 유전사는 ‘하나의 민족’이라기보다 열도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지역 집단의 누적된 역사다.

이 점은 필리핀의 언어적 다양성과도 맞닿아 있다. 필리핀에는 대략 180개 안팎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집계가 널리 쓰이며, 분류 기준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달라진다. 중요한 건 숫자 자체보다, 왜 이렇게 많은 언어와 지역적 차이가 유지되었는가다. 필리핀은 애초에 하나의 넓은 육지가 아니라 깊은 해협으로 나뉜 열도였고, 이런 지리적 조건은 집단 간 분화를 오래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따라서 유전적 차이와 언어적 분절성은 서로 무관한 현상이 아니라, 같은 환경에서 나온 결과로 같이 볼 수 있다.

필리핀인의 DNA를 더 복합적으로 만드는 것은 고대 층위만이 아니다. 역사시대의 교역과 외부 접촉도 분명한 역할을 했다. 중국 상인과의 접촉은 스페인 도래 이전부터 오래 이어졌고, 인도 및 이슬람권과의 연결도 남부 지역과 해상 교역망을 통해 누적됐다. 이런 교류는 단지 물건이 오간 사건이 아니라 혼인과 정착, 가족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따라서 일부 집단의 유전적 배경에도 미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필리핀을 단순한 주변부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나아가 인도양-남중국해 세계가 만나는 접점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6세기 이후 스페인 식민 지배와 마닐라-아카풀코 갈레온 무역은 이런 다층 구조를 또 한 번 바꿔 놓았다. 스페인의 지배는 종교와 제도, 도시 구조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멕시코와의 연결을 통해 사람과 문화, 식재료와 생활양식까지 함께 옮겨 왔다. 그래서 필리핀의 식민 유산은 단순히 스페인만의 흔적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을 매개로 한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의 연결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일부 필리핀 가계에서 보이는 중국계, 스페인계, 멕시코계 혼합의 흔적도 이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바나우에 계단식 논 이미지
바나우에 계단식 논 이미지. 고산 지역 공동체의 지속성과 지역별 문화적 층위를 설명.

한편 스페인 지배가 필리핀 전체를 완전히 동일하게 바꿔 놓은 것은 아니었다. 루손 산악 지대의 여러 공동체와 남부·내륙 지역의 일부 집단은 식민 권력이 비교적 약하게 미친 곳에서 더 오래 독자적 삶의 방식을 유지했다. 이런 지역에서는 고대적 조상 계통과 지역 전통이 더 강하게 남아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일부 토착 집단 연구가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필리핀인의 유전사는 중앙의 도시만 봐서는 안 되고, 산지와 숲, 외곽 섬 공동체까지 같이 보아야 전체 그림이 잡힌다.

그래서 “필리핀인의 DNA는 세계에서 가장 이상하다”라는 식의 문장은 자극적이긴 해도 학술적으로는 정확하지 않다. 더 적절한 표현은, 필리핀인의 유전사가 매우 층위적이고 지역 차이가 크며, 고대 인류사와 오스트로네시아 확산, 해상 교역, 식민 시대의 혼합이 모두 겹쳐 보이는 드문 사례라는 쪽이다. 특히 일부 토착 집단은 아주 오래된 조상 신호를 비교적 강하게 보존하고 있고, 열도 환경은 이런 다양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리하면 필리핀인의 DNA가 복합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아주 오래된 인류의 흔적, 데니소바인 관련 조상, 오스트로네시아 항해민의 확산, 수천 년의 섬 간 이동과 지역적 분리, 중국·인도·아랍 상인과의 교류, 스페인과 멕시코를 매개로 한 식민 네트워크가 차곡차곡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리핀인의 기원을 단일한 출발선으로 설명하는 시대는 사실상 지났다. 오늘날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필리핀인이 하나의 혈통이라기보다 수만 년 동안 여러 층의 인류사가 겹쳐 만들어 낸 열도의 모자이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