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막 시작되던 시기의 이름들, 그리고 우리가 그 이름을 얼마나 확실하게 읽을 수 있는지에 관한 정리
인류는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다. 우리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뼈, 도구, 음식물 흔적, 이동 경로를 통해 많은 것을 복원할 수 있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서 살았는지, 어떤 환경을 견디며 살았는지까지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거의 언제나 남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름이다. 누군가의 이름이 남는 순간, 과거는 갑자기 훨씬 더 가까워진다. 추상적인 집단이나 익명의 조상 대신, 실제로 살았던 한 사람이 눈앞에 서는 느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된 역사 속 첫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다만 이 질문은 단순히 오래된 전설 속 인물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 있던 시대의 동시대 기록에 이름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천 년 뒤에 쓰인 신화나 왕 목록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남긴 점토판이나 도기, 인장, 석기 같은 자료 위에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렇게 읽는 이름이 정말 개인 이름인지, 직책이나 기관 이름은 아닌지도 늘 따져 봐야 한다. 가장 오래된 이름일수록 오히려 가장 불확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지역은 메소포타미아다. 남부 이라크의 우루크에서는 기원전 3200년 무렵부터 초기 쐐기문자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글자들은 처음부터 문학이나 철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로 회계와 배급 기록을 위해 사용됐다. 누가 보리를 얼마나 받았는지, 몇 달 동안 어떤 물자가 오고 갔는지 같은 행정 기록이 문자 탄생의 핵심 배경이었다. 그래서 인류가 처음 문자로 붙잡은 사람은 영웅이나 왕이 아니라, 의외로 곡물과 맥주를 관리하던 행정 담당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맥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쿠심이다. 여러 점토판에는 보리 거래나 저장과 관련된 기록 끝부분에 ‘쿠심’으로 읽히는 기호가 등장한다. 이 때문에 쿠심은 흔히 ‘역사상 가장 먼저 기록된 인물 이름’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학자들도 이 표기가 진짜 개인 이름인지, 아니면 직책이나 기관, 혹은 특정 담당 부서를 가리키는 말인지를 완전히 확정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쿠심은 가장 오래된 인명 후보로는 매우 유력하지만, 절대적으로 확정된 최초의 개인 이름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쿠심이 흥미로운 이유는, 문자가 처음 붙잡은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일상적인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점토판에 남은 내용은 거창한 전쟁이나 신화가 아니라 보리 수량과 기간, 배급 같은 내용이다. 어떤 해석에 따르면 이는 수만 리터 규모의 보리를 수십 개월에 걸쳐 관리한 기록일 수 있다. 즉 역사에 가장 먼저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 가운데 하나는 왕이 아니라 장부를 다루는 실무자였던 셈이다. 여기에 니사처럼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이름 후보들도 있어, 초기 문자가 처음 담은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행정적이고 현실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초기 점토판에는 날짜와 맥락이 충분히 정교하게 남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누가 누구보다 먼저 살았는지를 정확하게 줄 세우기는 어렵다. 그래서 조금 더 연대와 정치적 맥락이 잡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고대 이집트가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된다. 이집트의 경우에도 초기 왕조 이전과 초기 왕조 시기의 이름들은 완전히 단순하지 않지만, 적어도 특정 인물이 실제 통치자였다는 점을 보여 주는 시각 자료와 왕명 표기가 좀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이집트 쪽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나르메르다. 나르메르 팔레트에는 나르메르의 이름이 초기 상형문자 형태로 나타나며, 그는 위이집트와 아래이집트의 통합을 상징하는 최초의 파라오 후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한 유물 안에서 두 왕관을 모두 쓴 모습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나르메르는 고대 이집트 왕권의 출발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자주 다뤄진다. 후기 왕 목록에는 메네스라는 이름이 더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고고학 자료와 직접 연결되는 쪽은 대체로 나르메르 쪽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메네스와 나르메르가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자주 논의된다.
그렇다고 해서 나르메르가 무조건 가장 이른 이름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초기 이집트 유적에서는 그보다 더 앞선 시기의 지배자로 보이는 카, 스콜피온 2세, 그리고 특히 이리호르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이리호르는 아비도스와 시나이 일대 비문에서 확인되며, 현재는 이름으로 알려진 가장 이른 이집트 통치자 후보로 자주 언급된다. 다만 이 시기의 표기 체계는 아직 완전히 정형화되지 않았고, 우리가 나중 시대의 읽는 법으로 초기 표기를 소급해 해석하는 부분도 있어서, 발음과 정확한 지위에 대해서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이집트에서 이른 시기의 이름들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아주 빠른 시기부터 여성 이름도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된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네이트호텝이다. 그는 나르메르의 아내이자 호르아하의 어머니였을 가능성이 크고, 어떤 해석에서는 사실상 초기 통치권을 행사한 여성 권력자로도 논의된다. 네이트호텝의 이름은 도기 인장과 다양한 유물에서 확인되며, 이 때문에 그는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여성 이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점은 문자 기록이 처음부터 남성 왕과 행정가만 남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주변과 중심에 있던 여성도 함께 남겨 두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물론 여기서도 주의할 점은 있다. 우리가 오늘 ‘쿠심’, ‘나르메르’, ‘이리호르’, ‘네이트호텝’이라고 읽는 이름은 현대 학계의 합의에 가까운 읽기 방식이지,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정확히 같은 소리로 불렀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이른 쐐기문자는 아직 어떤 언어를 얼마나 직접적으로 반영하는지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이집트의 초기 상형문자 역시 후대 체계만큼 안정적으로 해독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사람들의 이름을 ‘완전히 확실하게’ 부른다기보다, 현재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복원해 부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기록된 역사 속 첫 사람”이라는 질문의 가장 좋은 답은 하나의 이름을 신화처럼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가 처음 등장하던 시기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먼저 기록되었는지를 보는 데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보리와 맥주를 다루던 행정가가, 이집트에서는 통합과 왕권을 상징하던 초기 통치자가, 그리고 아주 이른 시기부터 권력과 종교에 연결된 여성 인물이 기록 속에 남기 시작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역사는 훨씬 인간적으로 보인다. 문자가 처음 붙잡은 인간은 완벽한 전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장부를 쓰고, 권력을 다루고, 유물과 무덤과 인장을 남긴 실제 사람들이었다.
정리하면 가장 이른 기록 인명 후보로는 메소포타미아의 쿠심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름이 진짜 개인 이름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이집트에서는 이리호르와 나르메르, 네이트호텝 같은 이름이 보다 분명한 왕권·권력 자료와 함께 확인된다. 결국 우리가 오늘 말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인류가 문자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기록에 또렷하게 떠오른 사람들은 왕과 관리, 그리고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었고, 그 이름은 완전한 확신보다는 해석과 복원의 결과를 통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